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 (문단 편집) == 가정사의 비극 == ※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은 ☆ 표시 * 할아버지: [[프란츠 카를|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카를 대공]] * 할머니: [[조피 프리데리케|바이에른의 조피 공주]] * 아버지: [[프란츠 요제프 1세]] * 어머니: [[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|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]]☆ * 큰누나: 조피(1855년 ~ 1857년)☆ * 작은누나: [[기젤라 루이제 마리|기젤라]]([[1856년]] ~ [[1932년]])[* 루돌프의 누이들 중 그나마 가장 평온한 삶을 살며 장수했다. 16세에 [[정략결혼]]한 10세 연상의 남편과도 원만히 해로했고, 4명의 자녀들도 어느 하나 요절하지 않고 잘 자랐다.] * 루돌프 황태자 본인(1858년 ~ 1889년)☆ * 아내: [[벨기에의 스테파니]](1864년 ~ 1945년) * 딸: [[엘리자베트 마리]](1883년 ~ 1963년) * 여동생: [[마리 발레리 마틸데 아말리에|마리 발레리]]([[1868년]] ~ [[1924년]])[* 루돌프와 달리 심한 편애를 받아서 빈정상한 오빠와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다. 자라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, 결혼 건으로 다시 틀어지는데 언니와 달리 한참 처지는(그렇다고 마냥 처진다고 볼 수는 없는 게 남편인 프란츠 잘파토어 대공 역시 같은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 출신이었다. 남편의 가문은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의 분가 중 하나인 합스부르크로트링겐토스카나 가문으로 프란츠 잘파토어의 조부는 토스카나 대공 레오폴트 2세였고 백부는 마지막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4세였으며 어머니도 [[양시칠리아 왕국]]의 공주였다. 망국의 왕족인데다 그마저도 군주의 자녀가 아니라 황제의 딸인 마리 발레리에 비하면 처지는 신분처럼 보이는 거지 남편 역시 황실의 혈통을 적통으로 잇고 있었던 만큼 [[귀천상혼]]은 아니었다.) 신분의 남편과 [[연애]] 결혼을 했다. 더 좋은 조건의 신랑감이 정략 결혼 상대자로 내정된 상태라서 반대가 심했지만 마리 발레리를 유독 편애한 어머니 엘리자베트 황후 덕분에 결혼이 성사될 수 있었고 루돌프 사망 1년 후 결혼해 그렇게 결혼한 남편과 10남매를 낳고 잘 사는 듯했다. 그러나 말년에 남편이 외도를 하고 [[사생아]]를 낳아 장인의 이름인 '프란츠 요제프'를 붙여주기까지 하자 가문이 모욕당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고, 50대 중반에 병사했다.] * 숙부: [[막시밀리아노 1세]](1832년 ~ 1867년)☆ * 숙부: [[카를 루트비히(1833)|카를 루트비히 대공]] * 사촌: [[프란츠 페르디난트|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]](1863년 ~ 1914년)[[사라예보 사건|☆]] * 사촌: 오토 프란츠 대공(1865년 ~ 1906년) * 당조카: [[카를 1세]](1887년 ~ 1922년) 상단의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라는 별표시가 꽤 많다는 걸 봐도 알겠지만, 당대 합스부르크 황가의 비극은 루돌프 황태자'''로만''' 끝난 것이 아니다. 황태자에게는 그저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[[프란츠 요제프 1세]]는 이미 루돌프 황태자 이전에도 여행에 동행했던 큰딸 조피가 어린 나이에 병사한 걸 보아야 했으며, 이름뿐인 멕시코 황제 자리에 올랐던 남동생 [[막시밀리아노 1세]]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. 막시밀리안은 어머니 [[조피 프레데리케 폰 바이에른|조피 대공비]]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고, 실제로 부고를 들은 조피 대공비는 충격을 받고 칩거하다 죽었다. 제수씨인 벨기에 공주 [[벨기에의 샤를로트|샤를로트]]는 진심으로 사랑한 남편이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 미쳐버리는 바람에 친정오빠인 '''[[레오폴드 2세]]'''[*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, 식민지로 삼은 [[콩고 자유국|콩고]]를 지옥으로 만든 끔찍한 인간 폐기물이다.]라는 말종의 명령으로 감금당한 채 60년 가까이 살다 외롭게 죽어야 했다. 뿐만 아니라 [[프란츠 요제프 1세]]는 자신을 황위에 앉힌 어머니를 배려하느라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아내 [[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]]를 방치하는 바람에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고, 여기저기 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엘리자베트 황후는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의 칼에 암살을 당하고 만다. [[막시밀리아노 1세]] 뿐만 아니라 또다른 동생인 카를 루트비히 대공 역시 위장병으로 일찍 사망했으며, 루돌프 황태자 사후 후계자로 낙점한 조카 [[프란츠 페르디난트]] 대공(카를 루트비히의 아들) 역시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서거하기 2년 전에 [[사라예보]]에서 [[사라예보 사건|부인과 함께 암살당하는]] 바람에 늙은 황제는 다시 후계자를 찾아야 했다. 황실의 가족사도 그렇지만 [[제1차 세계 대전]]을 앞두고 공적으로도 국제사회에서 이미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은 후계자들을 연이어 잃게 되자 [[카를 1세|본래는 황제가 될 일이 없었던 방계 황족]]을 황제이자 왕으로 만들어야 했고, 1차 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어 멸망했다. 이렇듯 [[프란츠 요제프 1세]]는 공적으로도, 사적으로도 불행한 황제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